2020년을 마무리하며
쉼 없이 달려온 한해였다.
새벽 4시 5시면 일어나서
운동 및 스트헤칭르 해 주고
아침을 먹고
글을 쓰고 다듬고, 출판 준비를 하고
오후엔 밭에 가서
먹거리를 챙기고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쳇바퀴 돌리듯
내 24시간을 돌리며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타다 남는 것도 없게 다 태우자고
그렇게
그래서
좀 부족한 게 있어도
후회는 없다.
고맙다 2020년이여!
반갑다 2021년이여!
내년도 올해처럼만...
<만 년의 사람>
한 이안이 직접 출판한 두 번째 작품입니다.
상상하는 게 버릇이었고,
그 힘으로
제 2의 인생을
맘껏 살아내고 있습니다.
꼰대에서 작가로.
상상의 날개를 달고
훨훨 함께 날아보시렵니까?
남이 대신 사랑하고,
남이 대신 놀아주고,
남이 대신 싸워주고,
남이 대신 결혼하고,
남이 대신 이혼하고.
TV 속에서만 넘쳐나는 것들, 하지만 현실에 부족한 것들.
나는 없고 연출만 넘쳐나는 세상.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가짜가 주인처럼 구는 세상.
점점 더 좁은 공간으로 스스로를 가둬가는 나로 넘쳐나는 세상.
소리는 시끌벅적 요란한데 안은 텅 비어있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주의 미아라도 된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인가?
내가 순진한 바보인가?
아니면 세상이 바보를 잔뜩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가?
이상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내가, 지금, 여기서, 꿈틀거려 본다.
세상, 참 바보같이 재미있다. 한데 서글프다.
꼰대 한이안 전자책을 만들어 냈다.
막연하게 꿈꾸고 장난삼아 시작한 게 시간이 지나면서 2019년의 목표가 되었다.
"독립출판사를 차려 내 손으로 출판을 해보자! 그게 올해의 내 목표다."
검색어에 전자책 출판 방법을 쳐 넣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올려놓은 글들은 많았다.
하지만 내 욕구를 다 채워주기에는 단편들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글들은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다 올려놓고 회원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게 하는 야박함도 보였다. 그런 글들은 나중엔 짜증이 나서 URL을 아예 기억해 두고 더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단편일지언정 볼 수 있도록 해 준 블로그지기나 카페지기들에게는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바로 그들 덕분에 내가 목표달성을 해냈으니 말이다.
처음엔 단편들이었던 것들이 뒤져볼수록 제대로 된 sigil이 되어 다가왔으니까.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남이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마음으로 무모하게 도전을 했고 이루어냈다.
자칭 2대 꼰대
요즘 젊은 사람들 기준대로라면 내 아버지는 꼰대였다.
하여 난 내 아버지를 당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1대 꼰대 자리에 올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자라고 대학물까지 묻힌 나는
자칭 2대 꼰대다.
6형제 중 유독 아버지의 꼰대삶을 넘치게 따라 살아가고 있으니
발뺌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난 꼰대가 싫지 않다.
8식구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살림으로
딸자식까지 대학을 보내시느라 허리띠 졸라매지 않았다면 택도 없었을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꼰대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하기에.
나 역시 꼰대로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글쓰기는 꿈도 못 꾸었을 것이기에.
어릴 적부터 지녀온 내 꿈을 그냥 놓아주어야 했다는 것을 알기에.
꼰대로 살아온 내 삶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래서 난 아침에 눈을 뜨면 운동을 마치고 거실로 나가
엄마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줘서 고마습니다, 엄마아버지.
이기적인 개념, 꼰대
아이구 저 잔소리!
내버려두면 내가 알아서 할 텐데.
먹여주고 가르쳐준다고 꼭 저렇게 티를 내.
누가 꼰대 아니랄까 봐.
물질적인 도움은 받으면서 참견도 잔소리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데, 그게 가능할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왜?
먹이고 가르치는 의미를 모르는 말이기에.
잘 키워내서 반듯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모르는 말이기에.
하여 꼰대질을 입에 올리려면 먼저 관계부터 끊어내야 한다.
꼰대질을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부모 자식 사이라면
그 관계를 끊고 지 혼자 나가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꼰대질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는 것이다.
경자년 새해에는 건강과 행복, 꿈을 다 이루고 사시길 기원합니다.
상대적인 개념
세상에 꼰대 아닌 사람이 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삶을 자포자기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한 없을 듯하다.
하다못해 자기 자신에게라도 꼰대질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생명체이다.
작심삼일, 스스로 달라지려는 생각을 품었다는 뜻이다.
예컨데,
'올해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 좀 올려야지.'
새해에 그런 생각을 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며칠 못 가 흐지부지 되었다고 하자!
아무도 그걸 꼰대질이라고 하지 않는다.
왜이겠는가?
주체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한숨 한 번 푹 내쉬고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나 아버지가
'공부 좀 해! 그래서 성적 좀 올려!'라고 했다면,
또 꼰대질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꼰대라는 말은 철저히 상대적이다.
누구나 다 꼰대임에도 나 아닌 남들에게만 쓰는 말이기에.
꼰대의 조건
아무나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사람을 책임져 본 사람만이 꼰대가 된다
그들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다
책임을 지면서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그 무게를 알기에.
누구도 그 책임을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기에.
제대로 책임이라는 것을 져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그 무게를 어찌 알겠는가?
절대 알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살거나 자신밖에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절대 지닐 수가 없다.
책임의 무게를 아는 사람, 그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꼰대철학이다.